떠돌아다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밖에서 들어왔는데, 천성이 도둑질을 잘하였다. 더구나 쥐가 많지 않아서 배부르게 잡아먹을 수 없었다. 단속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상에 차려 놓은 음식조차 훔쳐 먹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서 잡아 죽이려 하면 또 도망치기를 잘하였다. 얼마 후에 떠나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 식구들은 본래부터 고양이를 사랑했던바 먹을 것을 많이 주어 배고프지 않도록 하였다. 또 쥐도 많아서 사냥을 잘하여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으므로, 드디어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좋은 고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이 소문을 듣고 탄식하기를, “이 고양이는 반드시 가난한 집에서 기르던 고양일 것이다. 먹을 것이 없는 까닭에 하는 수 없어 도둑질하게 되었고, 이미 도둑질했기 때문에 내쫓기었다.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그 본질이 좋은 것은 모르고 도둑질하는 고양이로 대우하였다. 이 고양이가 그때 형편으로는 도둑질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사냥을 잘하는 재주가 있었다 할지라도 누가 그런 줄을 알겠는가? 그 옳은 주인을 만난 다음에 어진 본성이 나타나고 재주도 또한 제대로 쓰게 되었다. 만약 도둑질하고 다닐 때 잡아서 죽여 버렸다면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아! 사람도 세상을 잘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하는 자가 있는데, 저 짐승도 또한 그러한 이치가 있다.”라고 한다.

有猫從外至, 性偷而適䑕稀不能捕, 防之少怠, 輒竊食牀案, 人惡之甚, 欲除之, 又善躱避. 乆之移入他室, 其人素愛猫, 與之食, 俾不飢且多䑕, 能善獵得飽, 遂不復偷, 於是號稱良畜. 余聞之歎曰 此獸是必貧家物, 無食故不得已習偷, 既偷故棄逐之. 至吾家亦不諳本質, 又待之以偷獸, 其勢不偷, 將無以為生也. 雖有善獵之才, 誰復知之, 至遇其主, 然後素性見而能亦効矣. 向使偷時而擒殺, 豈非可惜耶! 嗚呼! 人有遇不遇, 物亦有然者也.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5, 「도둑고양이(偷猫)」

몇 년 전 친정집 근처 식당에서 가족 모임을 했을 때의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홀연히 어린 고양이가 나타나 식구들 사이를 나긋나긋 걸어 다니며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가게 사장님께 여쭤보니 얼마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길고양이란다. 생면부지의 동물이 느닷없이 친근하게 굴자, 드라마를 좋아하는 동생은 만약 이 고양이가 차에도 따라 탄다면 이는 키워야 할 운명이라며 도박판을 열었다. 동물 애호가인 식구들이 모두 참가하여, 부모님과 우리 부부, 동생 부부가 세 대의 차 문을 열고 간택을 기다린 결과, 이 영특한 고양이는 제 살 집을 잘 골라 차를 탔고, 동생은 운명적으로 집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첫 만남의 친근한 비비적거림은 고도의 작전이었던 듯, 운명의 첫 고양이는 이제는 쉽사리 곁을 허락하지 않는 도도한 매력을 뽐내며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다.

그 뒤로 몇 년 후, 이번에는 유기견이 출근하던 동생을 점찍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생겼다. 동물 업계에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어떻게 유기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통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이 유기견을 동물병원에 데려다주었는데 그 곳에서는 일주일 내에 입양이 되지 않으면 방침에 따라 안락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고생스러워도 길에서 살았으면 그나마 목숨이라도 보전했을 텐데, 덜컥 병원에 맡기는 바람에 시한부 인생이 되어 버렸으니, 동정심과 더불어 책임감까지 강한 동생은 덜컥 개를 구출해 와서 부모님 댁에 맡겨버렸다. 동물병원의 케이지 안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똥 범벅으로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고, 집에 오는 길 내내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불행을 딛고 일어나는 영웅 서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기에도 손색없는 극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적적한 부모님 곁에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안 그래도 주인보다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이라, 추정 나이 6살의 노령 유기견이 마뜩잖았던 것도 사실이다. 자식을 키우면서는 그다지 남 부끄러운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셨으리라 자부하는데, 이 작은 아이는 길에서 지내며 경계심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하면 이리 짖고 저리 달려드는 통에 남들 보기 부끄럽다며 마음고생을 조금 하고 계시긴 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고생 정도는 훨훨 털어버릴 만큼 반려견이 주는 심리적 위안이 대단하니, 하얀 솜뭉치 같은 이 아이는 365일 지치지 않는 애정을 조건 없이 바치고 있는지라, 부모님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방랑 생활이 길었던 노령견이라 여기저기 탈도 있는 편이어서, 노인네가 노인네 돌보느라 애쓴다고 칠순이 넘은 모친께 농을 하기도 하지만 돌봄을 베풀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친의 삶에 활력이 더 해지고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식으로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길에서 힘들게 지내던 고양이와 개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는 가족 우화의 산증인으로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의 고양이 이야기는 더욱 반가웠다. 이익 선생은 당쟁 속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고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그만둔 채 학문에 전념한 학자로 방대한 저작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담겨 있으며, 이 일화가 실려 있는 〈만물문(萬物門)〉에는 말 그대로 생활 전반에 관련 된 여러 글이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는 귀한 곡식을 갉아먹는 쥐를 처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양이를 종종 기른 모양이다. 집 안에 곡식이 없으니 고양이가 먹을 쥐도 없어 주인 밥상을 탐내는 비뚤어진 고양이가 되어 타박을 받다가, 먹을 것이 많은 이웃집에 가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귀한 고양이로 사랑 받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 뿐 아니라 동물도 좋은 세상과 옳은 주인을 만나 어진 본성과 재주를 드러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글에서, 세상과 어긋나 그저 학문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학자의 심정도 엿보인다.

반려 동물은 옳은 주인을 만나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는데, 사람이 세상에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 없다. 절대적인 명제 같기만 한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해 주는 부모는 누군가에겐 절대적이지 않았고, 수 백명의 사랑도 필요 없고 그저 나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결혼도 점점 어려워져 미혼가구가 늘고 있다. 회사에서는 바퀴를 찾는데 당신은 성능 좋은 핸들이었기 때문에 취업이 되지 못한 것일 뿐이라는 누군가의 위로는 잠시 마음을 녹여주기는 하지만 나의 핸들이 필요한 자동차는 영영 만들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요즘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사랑 받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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