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은 고위 관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학교입니다.
성리학의 이념아래 새로 세워진 나라인 조선에 걸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세운 것이라 명륜당에는 각종 유학에 관련 된 글이 많이 게시 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백록규발(百鹿規跋)> 인데 즉, ‘백록동서원 규약’ 의 서문에 해당되는 글입니다.
백록동서원은 중국 당(唐) 나라 초기 세워졌다가 황폐해졌는데 남송(南宋)시대 성리학의 대부이신 주희 선생께서 이 서원을 다시 일으켜 인재 양성에 힘썼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때 학생을 가르치면서 새로이 만든 규약이 〈백록동서원 학규(白鹿洞書院學規)〉인데 줄여서 백록동규(百鹿洞規)라고도 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선조임금께 바친 성학십도(聖學十圖; 성인이 되는 학문에 대한 열 가지 도해) 중 하나로 들어가 있을 정도로 백록동규(百鹿洞規)에는 성리학의 요체가 잘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륜당 뿐 아니라 지방의 향교에도 관련 글을 걸어 놓은 곳이 종종 있습니다.
사진의 현판에는 주자 선생께서 <백록동규>를 짓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학문을 하는 목적은 그저 글 잘 짓고 돈을 잘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니 옛 성인들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잘 익히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가을 성균관의 명륜당은 은행나무의 풍광도 훌륭합니다. 은행나무도 보실 겸 명륜당에 들리시게 된다면 ‘백록동규’도 한 번 눈여겨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백록규발(百鹿規跋)>
내가 보건대 옛날 성현이 사람에게 공부하는 것을 가르친 뜻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의리(義理)를 강명(講明)하여 그 몸을 닦은 뒤에 이를 미루어 사람에게 미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두루 보아 사장(詞章)을 짓기에 힘써 명성을 구하고 이록(利祿)을 취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부하는 이들은 이와는 상반된다. 성현이 사람 가르치는 법은 경(經)에 갖추어져 있으니,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 숙독(熟讀)하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분변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理)의 당연함을 알아서 자신에게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책려한다면, 그 일상생활의 법도와 금지 규정을 어찌 다른 사람이 베풀어 주기를 기다린 뒤에 준수하고 좇을 필요가 있겠는가. 요즈음에도 학교에 규정은 있지만 학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천박하고, 그 규정도 딱히 고인(古人)의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당(堂)에는 더 이상 그 규정을 쓰지 않고, 특별히 성현들이 사람들에게 학문하는 것을 가르친 바의 큰 근본을 취하여 위와 같이 조목조목 열거하여 현판에 게시한다. 제군들은 서로 강명하고 준수하여 이것을 몸에 실행하기를 기한다면,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바가 반드시 저 규정보다 엄격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고 혹 금지 규정의 범위를 벗어남이 있다면 이른바 규정이란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요 실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니, 제군들은 명심할지어다. ⓒ 한국고전번역원 Link
熹竊觀古昔聖賢所以敎人爲學之意。莫非使之講明義理。以修其身。然後推以及人。非徒欲其務記覽。爲詞章。以釣聲名取利祿而已也。今人之爲學者。則旣反是矣。然聖賢所以敎人之法具存於經。有志之士固當熟讀深思而問辨之。苟知其理之當然而責其身以必然。則夫規矩禁防之具。豈待他人設之而後有所持循哉。近世於學有規。其待學者爲已淺矣。而其爲法。又未必古人之意也。故今不復以施於此堂。而特取凡聖賢所以敎人爲學之大端。條列如右而擖之楣間。諸君其相與講明遵守而責之於身焉。則夫思慮云爲之際。其所以戒愼而恐催者。必有嚴於彼者矣。其有不然。而或出於此言之所棄。則彼所謂規者必將取之。固不得而略也。諸君其亦念之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