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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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정을 들어온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년이 훌쩍 흘러 버렸다.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다양한 책들을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졸업이 다가오게 되어 2년간의 생활을 돌이켜 보니 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다. 윤독은 많이 했던가? 기본서는 충실하게 읽었던가? 글씨 연습은 열심히 했던가? 뭐든지 마음에 딱 맞게 한 일이 없는 듯하다.

연수과정 때에는 녹화강의로 수업을 들은 터라 집중도 안 되고 무용(無用)한 한문보다는 생활에 더 도움이 되는 곳에 뜻을 두고 있었는지라 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었다. 연구과정에 들어와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졸업을 앞두고 돌이켜 보니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알바를 좀 줄였다면 공부를 열심히 했었을까?

그러나 아예 제자리걸음으로 발전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현토의 개념에 대해 연수과정 시절에 비해 체계적으로 알게 되는 등 나름대로 발전도 있었던 것 같다. 《장자》도 읽어보고 《육선공주의》도 읽어보고 《당의통략》도 읽어보는 등 비록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맛은 봤다는 점에서 뜻을 두고 나머지는 훗날 윤독이나 혼자서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남기고 마무리를 짓는다.

《전국책(戰國策)》에 이런 말이 있다.

行百里者 半九十里

백 리를 떠나는 사람은 구십 리 즈음을 와야 절반으로 여긴다.

통상 사람들은 시작만 하면 반쯤 한 것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책에서는 반대로 다 왔을 즈음을 반쯤 왔다고 여기니 생각의 전환 같기도 하고 참 와닿는 말이었다. 나는 다양한 책을 보기 위해 책은 많이 사 두었지만 끝까지 읽어본 책은 참 드물었다. 책들은 쌓여 가는데 완벽히 끝낸 책은 손에 꼽으니, 책을 사는 것만으로 반쯤 왔다고 여겨서일까? 이제 2년의 과정이 끝을 맺어가지만 반쯤 왔다는 생각으로 끝이 아닌 졸업을 해도 연구과정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백 리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가야겠다.

그동안 동기들의 도움도 참 많이 받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볼 때마다 도움을 받고, 공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면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고 모르는 부분은 시원하게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그동안의 일을 생각해 보면 나는 경험도 적고 지식도 천루하여 막상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움만 받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진다.

소동파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때껏 백날 책을 읽은 것보다 낫다.”

이 말은 나의 연구과정 생활을 투영하는 것 같아 매우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연구과정 생활을 하는 동안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준 동기들에게 너무 고맙고 이제 졸업을 하게 되면 매일 보지는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몰려온다. 또 한편으로는 동기들은 전부 서울에 남는데 나 혼자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어 이삭(離索)한 자하(子夏)처럼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삼국지에서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라고, 나누어진 지 오래되면 합치고 합친 지 오래되면 나누어진다고 하였다. 이제 비록 졸업하고 나면 흩어지게 되겠지만 다시 모일 날이 있게 될 것이니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으련다.

선생님들은 지금도 동기들끼리 모인다고 하신다. 서로 공부하다가 날을 잡아 경치가 좋은 카페에 가서 각자 모르는 글을 꺼내 돌려 물어보고 토론을 하신다고 한다. 연구과정을 졸업하신 지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모여서 이택(麗澤)이 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훗날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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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맛캘리

흔히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하죠~
어느 덧 졸업을 하게 되었군요~새로운 학문에 도전하여 졸업까지 맞게됨에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요~쉽지않은 여정을 끝까지 완주함에 찬사를 보냅니다^^ 깊이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도전하는 박사과정도 잘 해내리라 믿어요~응원할께요^^

問而知

실력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왠지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작은 진보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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