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자 성편? 어제 자성편!

영조

2학년이 되어 새로운 시간표를 보니 과목이 조선법제자료강독과 중국사적강독과 당송시강독으로 되어 있었다. 조선법제자료강독은 《대전통편(大典通編)》을 배우고 당송시강독은 《두율우주(杜律虞註)》라 들어본 책들이었지만 중국사적강독은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이라는 책으로 처음 들어본 책이었다. 더군다나 《어제자성편》은 중국서적이 아닌 우리나라 서적으로 영조(英祖)가 직접 편찬한 책이었다.

익숙지 않은 이 이름, 처음 들었을 땐 ‘어제자-성편’인줄 알았는데 한자를 보니 ‘어제-자성편’이었다. 이를 두니 옛날 한국사를 배울 때 금난전권(禁亂廛權)을 ‘금-난전권’이 아닌 ‘금난-전권’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께서 이 교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승정원일기를 번역하게 되면 영조부분을 번역하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어제자성편》과 《상훈(常訓)》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점과 이 책에는 중국의 사적에 관련된 고사가 많이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수업에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해 찾아보니 언해도 있고 영조가 사도세자의 교육을 위해 지은 책이라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해 보니 언해도 맞지 않은 부분도 있고 문장이 엄청 쉽지 않았다.

글을 읽다 보면 애매모호한 구절을 계속 만나게 되어 답답하기도 했고 겨우 10대 초반인 사도세자가 이러한 글을 보고 교육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매우 놀라웠다.

특히 중국에 관련된 고사가 매우 많았는데 《소학(小學)》, 《통감(通鑑)》 등 우리가 흔히 익힌 책에서 출전을 따온 경우도 있었지만 설선(薛宣)의 《독서록(讀書錄)》, 《진서(晉書)》 등 내가 살면서 이러한 책들을 다 읽어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책에서 까지 고사를 가져온 것을 보고 영조의 독서량에 또 한 번 매우 놀라웠다.

《어제자성편》을 배우며 많은 점을 깨달았는데 첫째는 선생님을 통한 배움이다. 나는 이제껏 문장의 구조만을 보고 글자를 새기며 번역하기에 바빴는데 선생님께서는 문장의 흐름과 논리로 글을 보셨다. 글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앞서 그 시대의 문화와 그 사람의 생각 등을 고려하여 번역을 해야 그 글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는 항상 글을 보기에 앞서 배경과 문화 등을 고려하여 보게 되었다.

둘째는 《어제자성편》 속에서 영조를 통한 배움이다. 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영조의 생각과 영조의 어투를 알 수 있었는데 영조는 噫, 嗚呼등 탄식하는 어투를 많이 쓰는 것을 통해 영조의 어투를 대략 파악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있어 사람마다 말투와 특정 단어를 많이 쓰는 등 서로 다르듯이 한문에 있어서도 각자 사람마다 개성있게 표현하고 특정 단어를 많이 쓰는 점이 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특히 언문(諺文)에 관해 한 말이 인상이 깊었다.

“언서는 우리나라의 방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소홀히 하는데 이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경전을 번역하겠는가? 내가 반절에 대해서 처음엔 그 묘처를 알지 못했었는데 만년에 잠이 없음을 인해 깨달았으니, 아, 성인이 아니라면 누가 이것을 제작할 수 있겠는가? 우리 영묘(英廟)께서 만세를 위해 제작하심이 아! 성대하구나! 그 속에 지극한 이치가 보존되어 있으니 보는 자는 마땅히 완미하여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諺書我國方語, 故人皆忽也, 而非此, 何以飜觧經傳乎? 予於反切, 初未識其妙處矣. 晩後因無睡而覺悟, 噫! 非聖人, 誰能制此也? 我英廟爲萬世制作, 猗歟盛哉! 其中至理存焉, 覽者其宜玩味而自得焉. ]

여기에서 언문에 대한 영조의 인식을 알 수 있었고 앞으로 승정원일기를 번역할 때 영조가 말하는 부분에 있어 조금 더 친숙히 다가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는 《어제자성편》 속에서 고사를 통한 배움이다. 책에서 고사가 숱하게 많은데 어떤 페이지는 한 줄마다 고사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던 고사가 계속 튀어나와 독서의 부족함을 알게 해 주었고 고사의 격언과 훈계를 하는 말 등은 나에게도 채찍이 되기에 충분한 말들 이었다.

후에 《어제자성편》을 다 읽고 승정원일기를 번역할 때 정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마침 승정원일기 번역실습에서 영조가 《어제자성편》의 글을 인용한 것을 보고 매우 반갑고 보람찼다. 이게 다 선생님이 이런 것을 고려해서 이런 책을 택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방학이 되고 나는 조선법제사와 역사문헌이 부분에서 제일 부족함을 느끼고 조선법제사와 《어제자성편》을 복습하기로 했다. 방학 동안 《어제자성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3차례를 읽었는데 볼수록 맛이 있었다. 이것이 영조가 말했던 자미(滋味)란 것이 아닐까?

“사람이 학문에 자미하는 것이 음식을 자미하는 것만 못하니, 아, 음식의 자미는 한 때의 배부름에 불과하고 학문의 자미는 곧 한 평생의 배부름이다.” [人之滋味乎學問, 不若滋味乎飮食. 噫! 飮食之滋味, 不過一時之飽也. 學問之滋味, 卽一生之飽也.]

《어제자성편》에 흠뻑 빠져 다 읽고 마침 책을 덮고 보니 날짜가 개강하기 전날이었다. 연구과정 마지막 여름방학을 함께한 책이라 감회가 깊고, 영조의 훈계가 담긴 글을 열심히 배웠을 사도세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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