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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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배우게 되면 처음에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의 교재를 보게 된다. 책을 펼쳐 보면 옆에 조그마하게 언해가 붙어 있는데, 나는 처음 배울 때 한자도 쫓아가기 벅차서 언해와 함께 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연수과정을 다닐 때에는 글자를 쫓아 따라가기에도 벅차 언해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다.

이제 어느덧 한문을 배우게 된 지 6년 차, 언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깨닫게 된 이유는 선생님께서 수업 때 해 주신 말씀 덕분이었다.

“《소학(小學)》에 ‘군자장경일강하고 안사일투〔君子莊敬日彊, 安肆日偸.〕’라는 구절이 있어. 기존 문집의 번역서들을 보면 ‘군자가 장중하고 공손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구차해진다.’라고 번역을 하는데, 언해를 보면 ‘군자가 씩씩하고 공경하면 날로 강하고, 편안하고 방사하면 날로 게으른다.’라고 되어 있다. 《소학언해(小學諺解)》를 따른다면 ‘莊’은 ‘씩씩히’로 ‘偸’는 ‘게으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데 기존 문집의 번역서들이 ‘장중하고’, ‘구차해진다.’로 번역한 것은 언해를 읽어보지 않아서 생긴 오류야. 자네들은 《두시언해(杜詩諺解)》와 《소학언해》를 읽게.”

이 말을 듣고 감탄하고 이제 언해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며 표현들을 흡수하겠다고 다짐만 하고, 미루어 두었다가 연구과정 마지막 학년이 되어서 《소학》을 읽으며 그 다짐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두율우주(杜律虞註)》 과목이 있어 함께 보게 되었는데 《두시언해》를 자세히 참고해 보니 왜 강조를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敬’과 같은 경우는 나는 항상 ‘공경히’로 풀어 왔다. 그런데 《소학언해》에서는 ‘조심케’라고 풀었다.

‘德性’은 당연히 의심 없이 단어 그대로 ‘덕성’으로 풀었는데, 《소학언해》에서는 ‘그윽한 덕’이라 풀었다.

‘良知良能’의 경우도 놀랍다. 나는 당연 단어 그대로 양지와 양능으로 풀었고 맹자언해에서 조차도 양지와 양능으로 풀었다. 그러나 《소학언해》에서는 ‘자연히 알며 자연히 능히 하는 것’이라 풀고 있다.

또 흔히 넘어갈 법한 단어들도 언해를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先生長者’는 그냥 보게 되면 ‘선생인 장자’로 풀기 쉽고, 나 또한 당연히 ‘선생인 장자’로 번역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소학언해》에서는 ‘선생이며 어른이며’로 두 가지를 따로 보았다. 이를 보고 나는 흔히 무심하게 넘어갈 법한 부분에서도 오류가 생긴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 무척 기뻤다.

또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논어의 언해도 있다. ‘人知而慍’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으로 번역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언해에서는 똑같은 ‘不’이라도 다르게 보았다. ‘사람이 아디 몯하야도 온티 아니하면’으로 풀고 있다. 하나는 ‘못’으로, 다른 하나는 ‘아니’로 푼 것이다.

언해로 유명한 《두시언해》도 마찬가지이다. ‘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는 두보의 시중에서 인용도 많이 되고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다. 언해를 없이 본다면 ‘집을 그리워하여 구름을 보고 맑은 밤에 서 있고 아우를 생각해 구름을 보고 흰 해에 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언해에서는 ‘지블 사랑하야셔 다래 건녀 말간 밤에 섯고 아우를 사랑하야 구름을 보고 밝은 나래 조오노라’로 풀고 있으니 ‘思’와 ‘憶’을 ‘사랑하여’로 풀어 놓았다.

나는 이제껏 글을 보며 다른 의미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왔었다. 그러나 언해를 통해 더욱 정밀하고 뛰어난 표현을 알게 되었다.

언해를 보며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다 보지 못한 《두시언해》나 불경들의 언해들이 많지만, 이제라도 언해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앞으로의 글을 볼 때 큰 힘이 되게 됨에 너무 기쁘다. 만약 선생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앞으로도 중요성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물론 독실하게 앉아서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타인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 바둑 급수를 늘리려고 10년간 혼자 산속에 박혀 살면 바둑 실력이 늘 것 같아? 똑같아. 모르는 건 그냥 한 번 물으면 되는 일이야.’

나는 이 말에 감명을 받았고 정말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짧게나 배웠지만 많은 영향을 받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큰 행운인 듯하다. 너무나 감사하고 지금은 은퇴하셔서 뵙지는 못하지만, 오늘 《소학》을 다시 읽으니 선생님이 더욱 생각나고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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