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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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렸다. 연구과정에 입학했으니 한문을 이제는 정말 제대로 봐야겠다 싶어서 수업 시간에 같이 읽는 어려워 보이는 책들 외에 기본서를 혼자서라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제대로 읽은 책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논어》와 《맹자》는 한번 돌려 읽기에도 벅찼고, 《고문진보》는 이제 시작하여 반의 반을 보았고, 《소학》은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틈틈이 보려던 초서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의 시간은 한문이 느는 시간이었다기보다는 공부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기본서는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모자라지 않다는 것과 현토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할 것, 좋은 글은 입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외우는 것이 좋다는 것 등등. 좋은 선생님들을 뵙고 배운 점도 많다. 한문은 처음 번역할 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번역할 것,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알고 인정할 것, 조사 하나에도 의미가 달라져버리는 문장을 섬세하게 쓸 것과 같은 것들이다. 부족한 점만 잔뜩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앞으로 읽어야 할 책, 해야 할 공부가 많은 걸 생각하면 설레기도 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한문에만 집중하면서 공부할 날이 얼마나 또 있을까? 대학원 공부한다고, 일한다고,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지금처럼 한문을 보지는 못할 것만 같다. 모두 내 선택이긴 하지만 한문이라는 한 영역 안에서도 갈 길이 이만큼이나 먼데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연수과정 때 선생님은 ‘기름에다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다 조각을 한다[畵脂鏤氷]’는 말을 가르쳐 주시며 한 학기 실컷 배우고 시험을 치르고 나서는 배운 내용을 다 잊어버려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일을 경계하셨다. 2년 동안 얼마나 공부가 쌓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손톱만큼이라도 쌓아놓은 공부라는 탑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연구과정 생활을 돌이켜보았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첨단 온라인 공간 게더타운! 연구실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지 접속만 하면 동기들을 만날 수 있고,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거나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 이제는 집에 있을 때 컴퓨터를 켜 놓으면 거의 항상 자동으로 게더타운부터 들어가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지금은 접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사람이 없어도 내가 항상 이곳에 들어와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공간이 쓸쓸하게 버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인 것 같다. 졸업하고 각자 제 길을 찾아 흩어져도 이곳에서라도 가끔 계속해서 서로 만나면 좋겠다. 물론 실제로 만나면 더 좋겠지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준 왕언니에게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 함께하며 나아갈 좋은 동기들을 만난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 늘 내가 물어보기만 하고 동기들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해주지 못한 건 미안한 일이지만, 멈추지 않고 공부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동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헤어지는 일을 잘 못 한다. 함께 보낸 시간으로 정든 사람들인데, 그냥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져야 한다니. 요즘은 아직 졸업식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나서 괜히 멍하게 있다가 퍼뜩 깨어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살다 보면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사람은 늘 바뀌기 마련이라며 또 즐거운 기대감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지금 잠시 헤어지지만 같이 윤독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오래오래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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