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의 정조대왕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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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뒤 쪽에는 동네 주민들의 산책 핫플레이스인 나지막한 팔달산이 있다. 하늘은 높고 뭉게구름에 눈이 즐거우니 성곽을 따라 쉬엄쉬엄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소박한 동네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거대 동상을 마주했다. 바로 수원을 사랑한 정조대왕의 동상. 원래 팔달산에는 70년대 정책의 일환으로 늠름한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훌륭한 장군인건 인정하는 바이나 이왕이면 수원과 관계 있는 분의 동상이 있는게 낫지 않겠냐는 수원시민들의 민원으로 강감찬 장군께서는 광교공원으로 이사를 가시고 2003년 정조대왕께서 새로 자리를 잡으셨다.

산책길에서 바로  동상이 보이지는 않고 샛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파란 바탕의 금박 글씨로 쓰인 철지나 발길이 뜸해진 관광지 간판 처럼 생긴 ‘정조대왕동상’ 입간판을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면 여기에 이런 동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다니신 분들도 많지 싶다. 남다른 호기심으로 한 번 내려가봤더니 깔끔하게 조성된 동상이 화성행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상 주변의 조형물에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의 일부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왕실 행사와 관련되어 의궤(儀軌) 라는 단어 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의儀’는 의례, 의식을 말하고, ‘軌궤’는 수레바퀴 자국이라는 뜻이지만 정해진 법도나 규범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의궤(儀軌)는 나라의 큰 일을 후대 사람들이 참고해서 볼 수 있도록 상세사항을 기록해 둔 매뉴얼과 같다. 화성(華城)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상세히 적힌 의궤도 그 몫을 톡톡히 했다.  

과연 그 의궤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으며, 얼마나 상세했는지를 이 벽면을 통해 살짝 맛볼 수 있다.  여러 그림 중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쪽에 위치한 가운데가 비어있는 돈대墩臺) 의 안 쪽과 바깥 쪽을 기록한 부분을 살펴보자.

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

在弩㙜西六十步。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城托之上女堞之內。倣遼薊平墩之制。甓築爲圓墩而重匝之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과 계주(薊州) 지역의 평돈平墩의 설계를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두 겹으로 둘렀다.

高十七尺五寸。 外圓圍一百二十二尺。 甓厚四尺。 內圓圍七十一尺。 內外圓之間。 空其心四尺五寸。 周以二層蓋板。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의 사이에 4척 5촌의 가운데 공간을 비워두고,  두 층의 덮개판으로 둘렀다.

下層高七尺三寸。 中層高六尺五寸。 皆使兵夫庇身。 外穿銃眼。 兼取其明。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고 바깥 쪽으로 총안銃眼을 뚫어서 빛도 들어오게 하였다.

上穴二十六。 下穴十四。上下蓋板上。 幷築泥灰 。
위구멍은 26 개, 아래구멍은 14 개이며, 위 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自下層空心。 由甓梯羊腸而上。 則至上層(架屋)…
아래 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 집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모든 위치의 모든 구조물에 대한 설명이 정리되어 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원본 및 국역자료는 ‘경기도메모리‘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덕후적 면모에 놀라는 한편, 이런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게 구축되어 있는 시스템을 보면서 그 유전자가 달리 어디로 갔겠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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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hin

헉~!
이 훌륭한 DNA!
귀하고 예사롭지 않은!
그대에게 전해졌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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