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어약(鳶飛魚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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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내과에서 부스터샷을 맞았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진료를 오신 어르신들도 많고 백신을 맞으러 오신 분들도 많아 병원이 시끌시끌했다. 힘들어하시는 간호사분들을 보며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월요일 오전 진료는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신을 맞고 나면 다음날  주사 맞은 부분이 아파서 돌아눕기도 어려울 정도인데 그렇게 하루만 더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진다. 신통방통. 항체야 무럭무럭 자라나렴.

주사 맞기 전 선생님께 문진을 받으러 가는데 병원 복도에 서예 족자가 걸려있었다. 잠시 여기가 한의원인가 싶은 착각이… 원장님께서 아마도 서예를 하신 분과 친분이 있으신 모양이다. 직접 쓰셨을 수도 있으려나? 문진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사진을 남기려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어리바리 한 환자인가 싶어 사무장님이 어서 대기실로 가라고 재촉을 하신다. 역시 월요일 오전 진료는 피하자.

救命濟生 구명제생
仁術萬歲 인술만세

생명을 구제하고, 훌륭한 의술을 만세에 펼치길 바란다는 뜻이다. 병원 개업에 맞추어 써 주신 것이 분명하다. 속도감 있는 행서체.


다른 족자는  ‘연비어약(鳶飛魚躍)’ 이라는 글귀이다.《시경》〈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인데, 이 시는《중용》에서 인용되어 더 유명하다. 행서이지만 획 전환 시 해서 처럼 딱부러지는 부분이 있어 힘이 느껴진다.

鳶飛戾天 魚躍于淵
연비려천 어약우연

솔개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못에서 뛰네

하늘에 새가 있고 연못에 고기가 있는 것은 별스런 일도 아니니 평범하게 자연을 노래한 시인가 싶지만 생각이 깊은 옛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깨달음을 주었던 모양이다. 솔개와 물고기에게는 각각 하늘과 연못이 자기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적재적소이다. 만일 덕이 만방에 펼쳐진 태평성대라면 모든 만물이 이 솔개와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다는건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점점 범위를 좁혀 나와 관계된 일까지 오다 보면 사심이 들어가서 나에겐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글을 써주신 분께서 개업을 하시는 원장님께 제자리를 찾은 솔개와 물고기처럼 훌륭하게 본업을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주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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