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번역하는 일기

Cap 2022-05-02 12-09-12-490

나른한 오후 점심을 먹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누워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전번역교육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000 학생이시죠?”

“네 맞아요”

“역사문헌하고 문집하고 둘 중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선택하시겠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나는 역사를 좋아했으니 역사문헌으로 택한다고 했다. 나중에 개강을 하고 난 뒤 실습대본을 받아보니 아뿔싸 초서가 뒤섞인 필사본 승정원일기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원래 대부분 1학년 때 문집을 하고 2학년 때 역사를 한다고 하니 나는 반대로 한 셈이다.

실습 중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자를 일일이 대조하는 축자대조부터가 시작이다. 연수과정 때 초서 수업을 들었고 평소 서예를 해서 초서를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어려운건 똑같았다.

축자대조를 한 뒤 본격적인 번역에 들어가는데 입시 기사, 역사문헌 어휘 등에 막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예컨대 ‘傳’은 왕에게만 쓰는 용어이고 ‘令’은 왕세자가 쓰는 용어이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부분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때라 둘이 뒤섞여 나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글자만 따라 해석하기도 했다.

특히 호조(戶曹)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심해서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넘어갔다. 그래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재밌는 부분도 있었는데 왕이 욕을 한 것을 기록한 대목도 있다.

仍下不忍聞之敎

“인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하교를 하셨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곱씹어 보니 욕을 한 것이였다. 이렇게 소소하게 재밌는 대목도 있는 한 편, 경제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

승정원일기는 나에게 있어 새로 배우고 낯선 글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하루에 목표를 초서 1페이지씩 공부, 역사문헌 정리 등으로 잡고 매일 보며 공부하는 중이다. 마음은 조급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맹자》의 한 구절을 생각해 본다.

其進銳者其退速

“빨리 진행하는 자는 퇴보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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