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뭐라도 하고 싶어서

고전번역원 옆 구파발천. 이젠 마음껏 산책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사서삼경은 읽었니?”

고전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할 때 지도교수님이 처음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다. 로켓을 쏘아 올린 지도 한참 된 시대에 사서삼경을 읽는다고? 아니, 읽어야 한다고? 왜?

고전소설을 공부하더라도 한문은 알아야 한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에 한문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학부 시절 동양철학 수업을 들으며 ≪논어≫를 접하긴 했지만 제대로 배운 건 대학원 입학 후 학교에서 열어 준 ≪맹자≫ 수업을 통해서다.

≪맹자≫는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는 기본 경서이다. 이 수업에선 ≪맹자≫ 원문에 스스로 현토를 달아 번역하는 것을 연습했는데, 처음 해 보는 일인지라 현토를 제대로 달지 못하는 건 당연한 데다 구두조차 제대로 떼지 못하기 일쑤였다.

“차장술중(此章述中)에 용공자지언(庸孔子之言)하니 견사성위수신지본(見思誠爲修身之本)이요..”
“잠깐, 거기까지 번역해 봐.”

“이 장에 기술한 말 가운데 공자의 말씀을 썼으니 생각을 성실히 하는 것이 수신의 근본이 되고..”

“뭔가 이상하지 않니. 현토 다시 달아 봐.”

“차장술중(此章述中)에…”

“다시!”

“어…”

“OO아, 네가 해 봐.”

“차장(此章)은 술중용공자지언(述中庸孔子之言)하니” (*이 장은 ≪중용(中庸)≫에 있는 공자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니)

“아!”

≪중용≫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대충 구두를 끊었다가 어이없게, 아니, 제대로 틀린 것이다. 아무리 수업 전에 낑낑대며 열심히 현토를 달아 가도 막상 수업 시간이 되면 틀리는 부분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매 수업시간마다 혼이 났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 놓고 틀려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때의 무수했던 ‘틀림’들은 이후 고전번역원에서 한문을 배우는 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어준 것 같다. 여전히 구두도, 현토도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고전번역원 연수과정을 다니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시한 연구과정 시험에 어찌어찌 운이 좋아 바로 합격하게 되었다. 시험 한 달 전부터 급히 준비한 데다 방대한 시험 과목 가운데 연수과정에서 배운 부분들 외에는 거의 대부분 못 본 채로 본 시험이라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운이라고 할 수밖에.

합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문을 배운 기간이 짧은 데다 그마저도 다른 공부와 일을 핑계 대며 온전히 한문에 집중하지 않았던 업보를 한꺼번에 치르고 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그놈의 ‘문리(文理)’란 걸 알 수 있을지. 어찌되었든 전공과 관련 있는 분야로 계속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 더군다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다니!

대학원에서 고전소설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한문을 공부하면서 늘 고전이 담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하필 지금, 하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자마자 눈을 찌푸리는 한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 말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난해한 고전 문헌 속을 해매며 발견한 작은 재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여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것, 번역하는 것, 이런저런 글을 쓰는 것 모두 공통점이 있으니, 한 번 혼자만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점점 이상한 결론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깨워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원 없이 공부하고 뭐라도 해 보자.

구독
알림
guest
0 답글
Oldest
Newest
본문 내 피드백
모든 답글 보기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