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주(節酒)

beer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을 ‘알쓰’라고 하는데 ‘알쓰’는 알코올 쓰레기의 줄임말이다. 나 역시 알쓰로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이 싫지는 않다. 술 중 좋아하는 종류를 꼽으라면 맥주를 꼽을 수 있는데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한 뒤 흠뻑 젖은 작업복을 입은 상태로 주변 호프집으로 가 생맥주를 시키고 기본안주로 나오는 강냉이를 몇 알 집어 먹다가 맥주가 나와 벌컥벌컥 들이키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리고 더도 말고 딱 한두 잔만 마신 뒤 나오면 무언가 하루를 알차게 보낸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또 목욕탕에서 때를 벗긴 뒤 초저녁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와 반해 소주는 정말 쓰다. 인생의 쓴맛을 덜 겪어봐서 그런 걸까 먹을 때마다 맛이 정말 없는 게 입에 대는 순간 인상이 오그라든다. 그리고 먹다보면 나중에 내가 술을 먹는 것인지 술이 나를 먹는 것인지 정신이 오락가락해지며 필름이 끊기게 된다. 하지만 막상 먹다보면 또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먹게 되는데 신기하다.

여기 아는 형 중 정말 술을 잘 마시는 분이 계시는데 한 번 마시면 소주를 기본 2~3병은 먹는다. 그리고 술에 대한 자신만이 철학이 있을 정도로 술을 사랑한다. 이 형을 보면 《통감절요(通鑑節要)》 나오는 번쾌(樊噲)의 일이 떠오른다.

“신이 죽는 것도 피하지 않는데, 잔의 술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臣 死且不避 巵酒安足辭

《通鑑節要》

번쾌가 홍문연(鴻門宴)에서 항우가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주는 족족 받아먹는 대문이다. 그리고 이 형도 정말 술을 마다하는 일이 없으니 정말 그야말로 유주무량(唯酒無量)이다.

나는 이번에도 한량(限量)을 넘겨 숙취를 몇 번 겪은 뒤 예전처럼 절주(節酒)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많이 마셔봤자 맥주 세 병 정도에서 그치리라고. 그렇다고 술이 또 싫은 건 아니라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식언(食言)해버렸다. 굳게 다짐했던 내 맹세는 고기 한 점, 소맥 한 잔에 유령(劉伶)의 나나니벌처럼 가소로워진다.

“의적(儀狄)이 처음 술을 만들었는데, 우임금이 마셔보고는 그 좋은 술맛에 감탄하고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게 될 것이다.’라고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어버렸다.”

儀狄 作酒 禹飮而甘之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遂疏儀狄而絶旨酒

《戰國策》

우임금은 좋은 말에는 절하고 술은 끊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사람으로 절주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금주(禁酒)를 실천하였다. 좋게는 여기되 폐단을 생각해 끊어버린 술을 굳이 우임금처럼 끊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급난(不及亂)에는 이르지 않아야 할 것으로 다시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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