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을 읽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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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업이 업인지라 고서는 날마다 봅니다만, 독서라고 하기에는 민망합니다. 이런 필자가 우연히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작자는 장유승입니다. 작자가 어느 날 얻게 된 고서 더미, 흔하디 흔해서 값어치가 없어 ‘쓰레기’입니다. 그러나 흔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곁에 두고 읽었다는 말입니다. 옛날의 베스트셀러라고 하겠습니다. 쓰레기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반란’입니다. 소재가 매력적입니다. 반란이라니 일단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몇 쪽을 더 읽어볼까요. 서술은 솔직담백하고 이야기는 술술 읽힙니다. ‘손 없는 날’에 얽힌 에피소드는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첫 번째 고서는 《白眉古事》, 고사를 모은 사전 중에 ‘백미’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소장처가 수십 곳이나 되는 흔한 책이라고 하네요. 책장을 얼마나 넘겼는지 모서리가 다 닳았고, 판목이 많이 상했으리라 생각되는 곳도 있습니다. 내용은 어떨까요. 글을 지을 때 참고가 되도록 임금의 도리에 관한 고사, 훌륭한 인물에 관한 고사 등 중국의 고사성어를 주제별로 분류해 놓고 간단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공부가 부족한 것일까요, 豊年玉이니 玉界尺이니 다 처음 듣는 고사입니다. 그러나 저만 그런 것은 아닐 테지요. 본책은 사전, 옛사람들도 분명 같았을 것입니다. 한 책이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다고 합니다. 분명 과거시험장에 들고 가서 커닝을 한 자도 있었을 테지요. 아, 제가 그랬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게 반가운 서명도 보이네요. 《文字類輯》입니다. 《白眉古事》와 같은 사전류라 본서에서 잠깐 소개되었습니다. 현대의 방식으로 제본이 되어 고서라 하기에는 그렇고 보존상태도 굉장히 좋습니다만, 내용은 영락없는 ‘고서’이고 지금까지 제게 푸대접을 받았으니 ‘쓰레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수 3학년 때였습니다. 임원이라 필자 이름으로 교재를 공구했더니 우수고객이 된 것인지 출판사에서 《朱書百選》과 《文字類輯》를 같이 보내왔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괜히 책의 중간 쯤 되는 곳을 펼쳐봅니다. <人事門>이 보입니다. 인물에 관한 고사를 모아두었나 봅니다. <人事門>의 맨 처음 고사는 <器量> 항목의 ‘腹容十百’입니다. 아마 천 권의 책을 외워서 배 속에 두었다는 의미인 듯합니다만, 짐작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고전디비에 검색해 보아도 나오지 않는군요. 蘇軾의 시에 “창자와 배를 채울 문자 오천 권은 필요 없고, 다만 항상 한잠 푹 자고 해 높을 때 차 한 잔 마시기를 바란다.[不用撑腸拄腹文字五千卷, 但願一甌常及睡足日高時.]”는 구절이 그나마 비슷합니다.

예전에 들었던 배에 가득한 책이 살림이 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또 배 속의 책을 포쇄한다고 볕 좋은 날에 배를 까고 누운 사람의 이야기도 기억이 납니다. 마음만은 오천 권은 내버려두고 차를 즐기는 데에 붙입니다만, 먼저 소식이 되어야 될 일입니다. 성독 공부의 필요는 항상 듣습니다만, 항상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쉽습니다. 우선 배 속에 논어집주 한 편이나 고문진보 한 권이라도 들이는 것이 바람입니다만, 올해는 여름이 거의 다 지나 포쇄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습니다. 포쇄한다고 집 앞에 배를 까고 누워있으면 미친 사람이 되기 십상이겠죠.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간다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腹容十百’에서 과거 회상으로, 또 공부 다짐에 휴가 계획까지, 이제는 《文字類輯》을 예전과 같이 대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쓰레기 고서의 반란이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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