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무성서원 ‘현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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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록 된 ‘한국의 서원’ 중 하나인 무성서원(武城書院)의 정문 ‘현가루(弦歌樓)’

弦歌현가: 현악기를 타며 노래 한다

얼핏 들으면 음주가무를 즐기는 곳인가 싶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주와 노래는 법도에 맞는 예악(禮樂)을 말하며,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인용이 된 것입니다.

원래는 태산서원(泰山書院)이었는데, 1696년 숙종 22년에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고 정식으로 이름을 내려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습니다. 이마 액(額)자는 문 앞에 걸어 놓는 현판이라는 뜻도 있어서, 사액서원이란 임금께 편액(額)을 내려받은(賜) 곳이라는 뜻입니다. 즉, 국가 공인 서원이 되어 땅과 인력을 보조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액을 하기 위하여 이름을 선정 할 때 무성武城 태산泰山 남천南川 셋 중에서 이 고장의 옛 이름인 무성武城이 당첨되었습니다. 이 서원에서 배향하여 모시고 있던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년 ~ ? )선생께서 이 고을을 잘 다스렸던 일과 《논어(論語)》에서 자유가 무성(武城)을 잘 다스린 이야기가 잘 맞아 떨어지기에 스토리텔링하기에 좋았던 것도 이유였을 듯 합니다. 그 덕분에 서원 정문의 이름이 ‘현가루(弦歌樓)’가 되었겠지요.

한국의 서원

《논어(論語)》 양화(陽貨)편 이야기

공자께서 제자인 자유가 다스리는 무성(武城)이라는 고을에 갔을 때입니다.
작은 고을이었지만 자유가 스승에게 배운대로 충실히 예(禮)와 악(樂)을 잘 가르친 덕에 고을에서 노랫소리가 들리자(弦歌之聲) 공자께서 뿌듯한 마음에 그 유명한 농담을 한 마디 하십니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雞焉用牛刀)?”

작은 마을이라고 소홀히 하지 않고 온 세상을 다스리고도 남을 예악(禮樂)이라는 큰 칼, 즉 큰 도리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제자에 대한 뿌듯함이었겠지요. 하지만 진지한 성격이었던지 농담을 다큐로 받은 제자 자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으니 ‘윗사람이 도(道)를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이 도(道)를 배우면 다스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를 놀린 것이 미안하셨던지 공자께서는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자유의 말이 옳고 소잡는 칼 얘기는 농담이었다고 정정하시지요(前言戱之耳).

진지하고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한 논어에서 화기애애한 풍경이 연상되어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원문 보러가기
子之武城,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曰:「割雞焉用牛刀?」
子游對曰:「昔者偃也聞諸夫子曰:『君子學道則愛人,小人學道則易使也。』」
子曰:「二三子!偃之言是也。前言戲之耳。」

 

참고: 임선빈. (2018). 17세기 무성서원武城書院의 건립과 운영 ―제향인물과 사액과정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35), 25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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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h

10년전쯤 한문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무렵 성균관 한림원에 청강생 등록을 해서 다녔는데, 한림원은 방학때 서원학습을 했거든요. 3박 4일 짜리였던가? 저는 그때 가서 무성서원 마루에서 소학을 배웠지 싶어요. 다른 학년은 현가루 2층에서 수업을 하셨구요. 무성서원, 현가루, 서원 돌아 나와서 있던 집 마당에 폈던 백합까지 무한정 생각 납니다. 무성서원 & 현가루!! 아무것도 못 알아 듣던 시절이었지만 마냥 좋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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