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15화_불비불명

연모15_7

연모15화

휘가 임금이 된 후 난관을 만나 가시밭길을 가는 건가 싶었는데 단짠단짠을 잘 주시는 작가님 덕에 15화는 달달하더군요.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휘의 반격도 시작되어 오랜만에 상헌군이 1패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반격의 첫 걸음으로 낙향한 전 이조판서 신영수 대감을 사헌부로 불러들이는 과정이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바로 비유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대목이지요.

不飛不鳴 (불비불명)
날지 않고 울지 않는다

다른 글자들은 행서체로 썼지만 반복 되어 나오는 不의 경우 두 번째 글자는 초서체로 모양의 변화를 주어 반복되는 지루함을 없애주셨네요. 좋은 서체입니다.

불비불명(不飛不鳴)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왕의 뜻을 짐작 할 수가 없겠지요. 여기에 관련 된 고사를 알아야 하는데 역시 배우신 분들이라 그런지 척하면 척입니다. 뒤에서 지운이가 부연설명을 해주는 것과 같이 이 내용은 이제까지는 날지 않고 울지 않으며 숨죽이고 있었지만, 이는 훗날 더 큰일을 도모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을 뿐 이제는 날아오르고 싶다는 휘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이 고사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즉위한 지 3년간 아무 일도 안하고 있자 신하가 왕에게 3년 동안 울지도 날지도 않는 새에 대해 아는지 넌지시 묻습니다. 대체 임금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질책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초장왕은 이게 다 뜻이 있는 것이니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로부터 반년 후 정말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새 마냥 일사천리로 국정을 다스려 초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게 됩니다.

법가 사상으로 유명한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가 쓴 《한비자(韓非子)》에 관련 내용이 나와 옮겨봅니다. [번역 출처 : 동양고전종합DB]

楚莊王蒞政三年,無令發,無政為也。
초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한 지 3년이 되도록 언덕에 앉아 있으면서 법령을 내리는 일도 없었고 정사를 행한 적도 없었다.

右司馬御座而與王隱曰
우사마가 곁에서 왕을 모시다가 왕에게 수수께끼를 내었다.

「有鳥止南方之阜,三年不翅不飛不鳴,嘿然無聲,此為何名?」
「어떤 새가 남쪽 언덕에 앉아 있으면서, 3년 동안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지도 울지도 않으며 묵묵히 소리 없이 있으니 이 새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王曰
왕이 말하였다.

「三年不翅,將以長羽翼。不飛不鳴,將以觀民則。
3년 동안 날갯짓 하지 않는 것은 장차 날개를 크게 펼치기 위한 것이고, 날지도 울지도 않는 것은 장차 백성을 다스리는 법도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雖無飛,飛必沖天;雖無鳴,鳴必驚人。子釋之,不穀知之矣。」
비록 날지 않더라도 날게 되면 반드시 하늘을 찌를 것이요, 비록 울지 않더라도 울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 것이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잘 알고 있다.」

處半年,乃自聽政,所廢者十,所起者九,誅大臣五,舉處士六,而邦大治。
반년이 지났을 때 비로소 왕은 스스로 정사를 보았다. 폐기한 제도가 열 가지요, 새로 일으킨 사업이 아홉 가지요, 주벌한 대신이 다섯이요, 등용한 처사가 여섯이니, 이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舉兵誅齊,敗之徐州,勝晉於河雍,合諸侯於宋,遂霸天下。
군사를 일으켜 제(齊)나라를 쳐서 서주(徐州)에서 패배시켰고, 하옹(河雍)에서 진(晉)나라에게 승리하였으며, 송(宋)나라에서 제후들과 회맹하여 마침내 천하의 패자(霸者)가 되었다.

莊王不為小害善,故有大名;不蚤見示,故有大功。故曰:「大器晚成,大音希聲。」
장왕은 작은 선은 행하지 않았으므로 큰 명성이 있었고, 조급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으므로 큰 공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한비자(韓非子)》

휘도 초장왕처럼 자신의 뜻을 펼치며 성군의 초석을 다질 수 있게 될까요? 성군이 되자니 지운이와는 영영 맺어질 수가 없고, 임금 자리를 내놓자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의 흉중에 어떤 결말이 계획되어 있을지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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