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히 귀에 가득하구나

양양히 귀에 가득하였다![洋洋乎盈耳哉] 《논어》   중

2015년 유난히 더웠던 여름, 아무리 창문을 열어놓아도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집에 있으면 꽉 막힌 답답한 공기에 그저 입만 벌린 채 축 늘어져만 있었다. 선풍기를 옷 안에 집어넣고 냉수에 발을 담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견디다 못해 냉장고 안에 반쯤 들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해 뜨면 나가서 해 지고 들어오면 적어도 낮 동안은 살 만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나가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논어》를 읽기로 했다. 뜬금없지만 한 번쯤 읽어보고 싶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왕 읽을 거라면 한문으로 된 원문을 같이 보고 싶었다. 서점에 가서 대충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원문과 번역이 같이 되어 있는 책을 골라 산 다음 에어컨을 찾아 도서관으로 갔다.

그때 샀던 《논어》는 《논어》의 경문과 한글 번역문만 편별로 차례대로 실려있는 책이었다. 번역문이 같이 달려 있긴 했지만 원문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문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무작정 공책에 한문으로 된 원문을 베껴 쓰고, 그 아래에 번역문도 베껴 쓰고, 한자를 한 자씩 찾아가며 그 문장이 어떻게 그렇게 번역이 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주자(朱子)의 주석도 없었고(그땐 ‘주자 주석’이란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역자 해설도 없어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글이 태반이었는데, 덕분에 내 멋대로 좋을 대로 보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여름 내내 읽었던 《논어》는 하루하루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었다. 가장 앞에 나오는 “배우고서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으랴[學而時習之, 不亦說乎]”부터 시작해서 온갖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데 하나같이 간결하면서도 너무나 와 닿는 문장들이었다.

온갖 문장들을 정신없이 읽다가 어느 날 확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악사 지(摯)가 악관이 된 초기에 연주한 <관저(關雎)>의 마지막 장이 양양히 귀에 가득하였다!”

– 《논어(論語)》 <태백(太白)>

‘악사 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고, ‘관저’가 무슨 음악인지도 전혀 모르겠기에(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시경의 관저를 읽어봐도 가사(?)만 읽어서 그런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양양히 귀에 가득하였다![洋洋乎盈耳哉]’ 하는 부분뿐이었다. ‘양양(洋洋)’은 성대하게 넘치는 모양을 형용하는 말이다. 인상 깊은 음악을 듣고 ‘귀에 가득 흘러넘치는 듯하다’라고 하다니, 너무나 공감되는 표현이 아닌가! 아마 공자께서 이 말을 하실 때에도 여전히 그때 당시 들었던 음악이 귀에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순간 당장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서 그칠 줄 모르고 귀에서 계속 맴도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논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툭하면 그날 읽었던 공자님 말씀과 맥락이 연결되어 말을 꺼냈다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때 읽었던 이 구절은 《논어》를 끝까지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이 구절과 함께 《논어》에 빠져서 읽었던 그 시간도 지금껏 한문을 공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지금은 보고 또 봐도 풀리지 않는 한문 문장들만 귀에 가득하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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