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말을 했다

치맥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논어》와 《맹자》로 한문 읽기를 처음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단어가 쉽고 문장이 짧아 이해하기 쉬운 《논어》부터 읽고, 그 뒤에 글의 호흡이 긴 《맹자》를 읽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시간을 아끼고자 과감하게 동시에 수강신청을 해서 월요일과 수요일은 《논어》를, 화요일과 목요일은 《맹자》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논어》와 《맹자》는 어차피 계속 보게 되는 책이라 처음에 뭘 먼저 읽어야 하는지는 큰 영향이 없는 것 같다. 한문을 공부하다 보면 다양한 글에서 인용이 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데 봐도 봐도 처음 보는 듯한 낯선 문장들이 꼭꼭 튀어나오니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책이랄까.

하지만 두 책의 느낌은 꽤 다르다. 〈맹자집주서설(孟子集註序說)〉에서 주자(朱子)는 《맹자》를 반짝거림이 가득한 얼음과 수정으로, 《논어》를 은은한 빛을 품고 있는 옥으로 비유했다.

《논어》의 문장들은 말이 부드럽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 두루두루 쓰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편안히 있을 곳을 생각한다.

군자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생각한다.

《논어》 〈이인(里仁)〉

하지만 《맹자》의 문장은 생동감이 있고 질문과 답변이 또렷해서 소설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전은 그저 딱딱하고 고루할 것 같았는데 읽으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 적이 있었다.

맹자가 제(齊)나라에 가서 당시 왕인 선왕(宣王)과 대화를 한 대목이다.

맹자 : 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다른 나라로 멀리 다녀왔는데, 다녀와서 보니 친구가 처자식을 쫄쫄 굶고 덜덜 떨게 그냥 두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선왕 : 그 친구와는 절교를 하겠다.

맹자 : 그렇다면 죄인을 담당하는 관리가 아랫사람을 잘 거느리지 못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선왕 : 그만두게 해야지!

맹자 : 그렇다면 사방의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선왕 : … (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말을 했다.[顧左右而言他])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

기껏 좋은 말을 해주는데 짐짓 찔려 좌우를 돌아보며 딴청을 부리는 왕이라니, 딱딱한 고전에 나오기는 너무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가. BGM이라도 깐다며 당장 사극의 한 장면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물론 너무 인간적이라 결국 사욕을 이기지 못하고 이웃 연(燕)나라를 침공한 탓에 국력이 쇠퇴하는 단초를 일으키긴 했지만.

지나간 역사를 보면 왕 노릇 하며 후대에 좋은 평가를 받는 방법은 거의 정해져 있다. 검소하고, 아랫사람을 잘 등용하고, 간언을 귀 기울여 듣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는 등등. 역대 왕들이 눈과 귀가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그저 눈앞의 달콤함에 취해 사욕을 포기하지 못할 뿐.

활자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기에 부담 없이 흉을 보지만 사실 매년 결심하면서도 유야무야되는 새해 3대 계획- 운동, 공부, 독서-이 실패하는 이유와 나쁜 왕이 되는 이유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해지고 싶으면서 야밤의 치킨과 맥주를 포기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나 맹자 앞에서 딴청을 피우는 제선왕이나 맡은 역할과 책임은 다르지만 어려우면서 해야 할 일과 손쉬운 하고 싶은 일 중에서 둘 다 같은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하는 제선왕을 보고 낄낄거릴 때가 아니구나.

새해 결심 3형제 _ 모죠의 일지 중

이렇게나 기억에 남은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는 처음으로 한문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을-물론 다시 곱씹어 보니 마냥 우스운 말은 아니지만 정말 처음 봤을 땐 웃겼다-느끼게 해주어 고전을 좀 더 다채롭게 보도록 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고전 공부를 하게 해준 고마운 구절이다. 앞으로는 내가 혹시 해야 할 일을 앞두고 두리번거리며 딴소리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할 때 정신차리라는 주문으로 써야겠다.

물(勿)고좌우이언타발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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