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섬, 하화도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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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다. 이름만 들어도 까닭 없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여수다. 여수라고 하면 단연 ‘여수 밤바다’가 떠오르겠지만 야영을 즐기는 백패커들에게는 밤바다보다 섬 바다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꽃섬으로 알려진 여수 하화도로 향했다. 하화도는 산책로가 잘 갖추어져 있어 하룻밤을 머무르더라도 여유로운 야영과 하이킹이 모두 가능하다. 이른 아침 출발하여 넓고 푸른 바다 위에서 일출을 감상하였다. 하화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왼쪽으로 굽이진 언덕을 오른다. 사방으로 탁 트인 하화도의 풍경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언덕에 수놓아진 노란 유채꽃이 마치 바다에서 나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가까이 다가서면 그제야 바다와 뭍이 나뉘어 보인다.

하화도에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망대가 있다. 서로 누가 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 너도나도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었다. 어느 전망대가 낫다고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전망대가 못하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열을 다투었다. 그 이름도 참으로 특이하다. 낭끝전망대, 시짓골전망대, 깻넘전망대, 막산전망대. 낭끝, 시짓골, 깻넘 이와 같은 말들은 전라남도의 방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선착장에 앉아 계시던 섬마을 할아버지에게 낭끝이 무어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이렇게 다시 떠날 구실을 만든다.

여수 하화도에는 섬마을 주민들이 함께 가꾼 애림민 야생화공원이 있다. 봄날, 하화도에 간다면 앙증맞은 제비꽃부터 노란 유채꽃과 붉은 동백까지 자태를 뽐내는 온갖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하화도는 그 이름처럼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찾아가 보아야 할 곳이다. 텐트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은 주로 야생화공원에서 밤을 보낸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때는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함께 모여 있는 친구들과 부부 캠퍼가 있었다. 나는 마치 어제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공원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한 공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에는 환경 오염 문제로 너무나 많은 인파로 인하여 출입이 제한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배낭과 텐트를 정돈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하화도도 식후경, 맛집을 찾아 나섰다. 하화도 선착장 앞에 있던 와쏘 식당에는 하화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서대회와 문어 요리, 풍미가 남다른 부추전 등을 맛볼 수 있다. 음식 이외에도 가스, 라면, 주전부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나는 셋이 먹다 한 명이 죽어도 모를 만큼 맛 좋은 부추전을 먹었다. 하화도 옆 개도에서 생산되는 개도 막걸리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풍미가 넘쳤다.

시큼한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서는 마저 섬 길을 걷는다. 건들건들 걷기도 하고, 사뿐사뿐 나비처럼 걸어보기도 하고 어디선가 짹짹 새 소리가 들려오면 따라 울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소풍을 떠난 듯이 봄을 맞이한다.

조선 후기 여행자의 삶을 살았던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은 말년에 금강산 유람을 하루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생 근심만 많고 즐거움은 적어 만일 근심이 없어질 때를 기다렸다가는 아마 늙어 죽고 말 것이다. 좋은 날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슬퍼하고 오랜 염원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마침내 금강산으로 떠날 계획을 정하였다.

바쁜 일상에 지치고 온갖 근심 걱정이 마음을 어지러이 만들어 자꾸만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만일 근심이 없어질 때를 기다렸다가는 늙어 죽고 말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툭 던진다. 이대로 근심과 함께 늙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올봄에는 여수의 섬 하화도의 바다로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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